조선 8

조선 보부상 시조가 백달원이라니?

조선 보부상의 시조가 백달원이라는 황당무계한 말을 논증에 충실해야 할 학위 논문에서 스쳐가듯 그런다더라 하고 언급하여 사실인냥 받아 들이게 하더니, 백과사전은 아예 사실이라고 하고, 공공기관마저 사실로 공개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지 않지만,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거짓말이어도 믿는다는 전형적인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다. 백달원 소설을 처음 쓴 사람은 박달성(朴達成)이다. 박달성은 고향인 평안북도 태천군 원면에 있는 산 이름인 가자봉산(茄子峯山)에 따온 가자봉인이라는 필명으로 1927년 설날에 최초로 백달원 설화를 별건곤에 기고하였다. 이괄의 반란 때 인조가 공주로 피신가던 길에 백달원이 곤경에 처한 인조를 지게에 지고 공주까지 걸어 갔다는..

조선 2022.12.14

충파인가, 당파인가? 임진왜란과 당파 전술

임진왜란시 조선군이 쓴 용어인 당파는 적을 상대하여 수군은 대포와 불화살로, 육군은 대포로 파괴한다는 뜻이다. 이를 오해하여 충파라는 단어를 쓰면서 거북선이 직접 적선과 부딪혀 파괴했다고 틀리게 말 하는 사람도 있다. 倭變充斥 爲禍孔棘. 撞破賊船之具, 無過於大將軍箭, 而銃筒所鑄鍮物 準備無策, 故李浚慶收合諸寺之鍾, 將鑄銃筒. 왜변이 충척하여 화가 매우 위급합니다. 도적의 배를 당파하는 도구로는 대장군전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총통을 주조할 놋쇠를 준비할 대책이 없어, 고로 이준경이 모든 사찰의 종을 거두어 장차 총통을 주조하려 하였습니다. - 1555. 8. 18(음력7. 22) 명종실록 주: 대장군전(大將軍箭)은 천자총통으로 발사하려고 벌목하여 2년 말려 다듬은 목재에 철제 부품을 달아 만든 화살이다..

조선 2022.12.13

심청 고향은 황해도일까?

심청전은 불교 용어가 약간씩 들어 가기는 했으나, 효도를 주제로 한 무위자연의 도가 계열의 소설이다. 시대 배경은 송나라 말이다. "송나라 말년의 황주 도화동의 ᄒᆞᆫ 사ᄅᆞᆷ이 잇스되 셩은 심이요 명은 학규라" 심청이가 떠나 뱃길에 나서는 날은 3월 보름이다. "금년 삼월 십오일의 발션ᄒᆞᆫ다 ᄒᆞ고 가거늘 심청이 부친게 엿자오ᄃᆡ 공양미 삼백석을 이무 수은ᄒᆞ여ᄡᅳ니 이제난 근심치 마르ᄋᆞᆸ소셔." 남은 것은 공간 배경이다. "우리난 남경션인으로 인당수 지ᄂᆡ갈 제 제숙으로 제ᄒᆞ면 무변ᄃᆡᄒᆡ를 무사이 월셥하고 십십만금 퇴를 ᄂᆡ기로 몸 팔여 ᄒᆞ는 쳐녀 이ᄡᅳ면 ᄀᆞᆸ슬 앗기지 안코 주노라." 이렇게 심청은 남경 선원들에게 팔려 간다. 심청이 황주에서 탄 상선의 뱃길은 다음과 같다. 장사를 지ᄂᆡ..

조선 2022.10.27

허구 인물 전우치와 시

戲贈田禹治(전우치에게 장난 치려고 써서 주다.) "吾君信是不聰明. 半夜佳賓不識迎. 嘯傲歸來秋月白. 美人相憶華山靑." 저는 군께서 무릇 총명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한 밤에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줄 몰라서입니다. 노닐다 돌아 오니 가을 달이 밝습니다. 미인과 서로 화산의 푸르름을 생각합니다. 田公來容李同知希輔家. 先生乘月訪之已寢熟矣. 還途所詠也. 希夷先生常入寢. 而一日忽起謂侍人曰 好客來 灑掃焚香以待之 种放果來. 田公見此詩甚愧曰 人之精神通塞有時 豈能盡如希夷云云. 전공이 얼굴을 뵈러 대사성 동지 이희보 집에 오셨다. 선생이 달빛을 타고 찾아 오셨더니 벌써 깊이 잠 들었다. 돌아가는 길목에서 읊으셨다. "희이선생은 항상 잠 들어 계시구나." 하루는 홀연히 일어나 시자에게 이르되 "좋은 손님이 오실 것이니 물을 뿌..

조선 2022.10.27

전우치는 실존 인물인가?

문학 작품 비평이 주제가 아니기에 도술을 어떻게 배웠는가 하는 구슬 설화나, 황금 들보로 백성을 구제했다거나, 도술로 악행을 저질렀다는 등의 내용은 배제하였다. 따라서 서경덕을 등장시켜 늘린 내용도 다루지 않았다. 또한 문헌상 시기가 가장 앞 선 문헌설화를 주로 표시하고, 이를 그대로 따른 같은 내용의 뒷 시대의 문헌설화들은 중복에 불과하기에 될 수 있는 한 생략하였다. 다만 출생지에 대해서는 문헌설화가 소설화 되어 가면서 어떻게 변천했는지 보기 위해 같은 내용이어도 중복하여 나열하였다. 且余於萬曆甲辰 爲試才御史於本府, 使事未完 淹留幾至旬日. 其時同處有若安四耐陳主翁諸人 年皆八十餘. 以其近古聞見博而閱事多 眞所謂喬木遺老也. 余因二老得聞新異之說久矣. 于今三十餘年 邈然如隔世事也. 常記新舊說話 賴以破寂. 第念前朝..

조선 2022.10.27

하멜, 조선왕국 보고서

하멜 보고서(일명 하멜 표류기) 뒷편에 코레이 왕국에 대한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덧붙힌 별책 성격의 보고서다. (지리) 우리는 코레이라고 부르고, 그 국민들은 조선국이라고 하는 이 나라는 위도 33도와 44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약 3천리에, 동서로 약 2천2백리다. 조선의 지도 제작자들은 나라를 직사각형처럼, 놀이용 딱지처럼 묘사했지만, 깊은 바다를 이르는 여러 확장 지도가 있다. 나라는 영토를 8도로 나누었는데, 360 곳의 성읍 그리고 산과 해안을 따라 곳곳에 위치한 수 많은 성과 진을 발견할 수 있다. 현지 사정을 알지 못하면, 배로 나라에 접근하기가 너무 위험한데, 해안 절벽 옆과 얕은 곳은 어디서나 선박 통행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에는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으며, 남부..

조선 2021.12.05

하멜 표류기, 헨드릭 하멜 보고서

난파 1653년 6월 18일 인도 총독과 평의회의 지시로 우리는 스뻬르베르호(the Sperwer hawk)를 타고 자카르타(Batavia)에서 대만(Taijoan)으로 항해했다. 물러 날 니꼴라스 베르베흐경의 후임인 대만총독 꼬르넬리스 께이사르경이 승선해 있었다. 7월 16일 순조로운 항해로 대만 정박지에 도착하여 꼬르넬리스 께이사르경이 하선하고, 화물을 풀었다. 7월 30일 대만에서 일본(야빤Iapan)으로 가라는 대만 총독과 의회의 명령에 따라 신의 이름으로 우리의 여정이 계속 되도록 빌며 떠났다. 7월 31일 날씨가 매우 좋았지만 저녁 무렵부터 대만 연안에서 폭풍이 불어오더니 밤새도록 더욱 거세졌다. 8월 1일 새벽녘 우리는 작은 섬 근처에 있었다. 섬 뒷편에서 피신할만한 곳을 찾아 닻을 내리려고..

조선 2021.12.04

한국 축구의 역사 - 한국 축구의 유래

지난 주 우연히 [신명철의 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축구(1)1라는 기사를 읽었고, 역사적으로 의문점들이 눈에 띄어 전반적으로 한국 축구의 기원을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대한축구협회의 '간추린 축구사'와 '한국 축구 백년사'를 확인하니 내용이 모두 잘 못 되어 있어서 사실을 바로 잡고자 이 글을 작성하였다.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대한체육회 황영현님에게 감사합니다. 들어가는 말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 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 대한축구협회, 간추린 축구사. 대영제국 왕실 해군 역사에서 플라잉 호스라는 이름을 가진 함정은 존재한 적이 없다. 대영제국 왕실 해군에 플라잉이라는..

조선 201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