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충파인가, 당파인가? 임진왜란과 당파 전술

허구인물 전우치 2022. 12. 13. 07:28

천자총통과 대장군전

임진왜란시 조선군이 쓴 용어인 당파는 적을 상대하여 수군은 대포와 불화살로, 육군은 대포로 파괴한다는 뜻이다. 이를 오해하여 충파라는 단어를 쓰면서 거북선이 직접 적선과 부딪혀 파괴했다고 틀리게 말 하는 사람도 있다.

倭變充斥 爲禍孔棘. 撞破賊船之具, 無過於大將軍箭, 而銃筒所鑄鍮物 準備無策, 故李浚慶收合諸寺之鍾, 將鑄銃筒.

왜변이 충척하여 화가 매우 위급합니다. 도적의 배를 당파하는 도구로는 대장군전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총통을 주조할 놋쇠를 준비할 대책이 없어, 고로 이준경이 모든 사찰의 종을 거두어 장차 총통을 주조하려 하였습니다.

- 1555. 8. 18(음력7. 22) 명종실록

주: 대장군전(大將軍箭)은 천자총통으로 발사하려고 벌목하여 2년 말려 다듬은 목재에 철제 부품을 달아 만든 화살이다. 전체 길이가 11척9촌(약360cm), 지름이 5촌(약16.6cm), 무게는 56근(33.6kg)이다. 화살 앞에는 길이 7촌(약23.3cm)짜리 철재 철혹(화살촉)을 끼우고, 화살 중간 부분에 길이 2척5촌(약 75.7cm), 높이 4촌6분(약15.3cm)짜리 직삼각형 모양의 철우(철제 날개) 3개를 단다. 4개의 철고(철 테두리)로 날개를 감싸 조였다.  화약 56근(33.6kg)을 폭발시켜 쏘면 900보(1.08km)를 날아 간다고 한다.

판옥선 구조

1. 수군

臣嘗慮島夷之變 別制龜船 前設龍頭 口放大炮 背植鐵尖 內能窺外 外不能窺內 雖賊船數百之中 可以突入放炮是白乎等用良. 今行以爲突擊將所騎 而先令龜船突進其賊船 先放天地玄黃 各樣銃筒 則山上岸下上 守船三屯之倭 亦放鐵丸 亂發如雨 間或我國人相雜發射爲白去乙. 臣益增憤勵 促櫓先登 直擣其船. 則諸將一時雲集 鐵丸, 長片箭, 皮翎箭, 火箭, 天地字銃筒 等 發如風雨 各盡其力 聲振天地. 重傷顚仆者 扶曳奔走者 不知其數. 仍以退屯高陵 無敢進前之意.
신은 일찍이 섬 오랑캐의 변고를 걱정하여 특별히 거북선을 제작하였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설치하여 입에서 대포를 쏘게 하였고, 등에는 쇠를 뾰족하게 심었습니다. 안에서 밖을 능히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능히 안을 볼 수 없으니, 아무리 적선 수 백척 가운데에 있다고 하더라도 가히 돌입하여 포를 쏠 수 있는 바이옵니다. 이 번에 전투를 행함에 앞서 기선군의 돌격장에게 거북선으로 그 적선에 돌진하라고 명을 내려서, 먼저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등 각양 총통을 발사하니, 바로 산 위와 언덕 아래위에서 선박을 지키는 세 주둔지의 왜적 역시 철환을 쏘는데, 비처럼 어지럽게 발사하므로 간혹 내 나라 사람들끼리 서로 뒤섞여 발사하였습니다. 신은 더욱 더 분려해서 노를 재촉하여 앞장 서 즉시 그 배로 곧바로 달려가 마구 쳤습니다. 즉 모든 장수가 일시에 운집하여 철환, 장편전, 피령전, 화전,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을 비바람처럼 발사하여 각자 그 힘을 다하니, 소리가 천지에 진동했습니다. 중상으로 거꾸러진 자와 부축을 받으며 달아난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인하여 높은 꼭대기에 주둔하던 왜적들이 후퇴한채 감히 전진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 당포파왜적병장(唐浦破倭兵狀) 3, 임진장초(壬辰狀草)

주: 거북선 등이 청녹색인 이유는 놋쇠를 붙혀서다. 구리는 부식하면 청녹색으로 변한다. 맑은 물에 1mm 두께의 철판과 동판을 담둬 뒀을 때 철판은 6년을 견디지만, 동판은 197년을 견딘다고 한다.

주: 거북선은 이순신의 발명품이 아니라, 태종이 1413년 3월 15일(음력 2월 5일)에 임진강 나루터에서 거북선과 왜구 해적선의 전투를 구경한 것으로 보아 고려에서 창안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는 개량하였을 것이다.

初二日辰時 聞賊船駐泊唐浦船滄. 巳時 直到同處 則賊倭無慮三百餘名. 爲半入城焚蕩 又多城外據險 俱放鐵丸倭船 大如板屋者九隻 中小船幷十二隻 分泊船滄. 其中一大船上 斗起層樓 高可三四丈 外垂紅羅帳 帳之四面 大書黃字. 中有倭將 前立紅蓋 略無畏怖爲白去乙 先使龜船 直衝層樓船下 以龍口仰放玄字鐵丸 又放天地字大將軍箭 撞破其船.
초이튿날 진시(23~01시)에 적선이 당포 선창에 주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시(09~11)에 같은 곳에 즉시 이르렀더니, 즉 왜적이 무려 300여명이나 있었습니다. 반은 성에 들어가 분탕질을 하고 있었고, 또 많이 성 밖 험준한 데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 함께 왜선에 철환을 쏘았는데, 판옥선 같이 큰 것 9척, 중간과 작은 배를 합쳐서 12척이 선창에 나누어 주박중이었습니다. 그 중 한 큰 배 위에 층루가 불쑥 솟아 있는데, 높이가 가히 서너 길이고, 밖에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웠으며, 휘장 4면에 크게 黃자를 적었습니다. 안에 왜장이 앞에 홍개를 세우고서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아니 하기에,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루선 아래를 즉시 쳐서 용의 입에서 현자총통의 철환을 쏘고, 또 천자총통과 지자총통, 대장군전을 쏘아 그 배를 당파하였습니다.
- 당포파왜적병장 4, 임진장초

주: 왜장은 득거통행(得居通幸)이다. 1592년 7월 10일(음력6. 2) 오후에 죽었다.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초이튿날 당포에 이르렀더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줄지어 정박해 있었습니다. 가운데에 한 큰 배가 있었는데, 위에 설치한 여러 층의 루에서는 바깥에 붉은 비단 휘장을 늘어 뜨려 놓고서 도적의 우두머리가 금관을 쓰고, 비단 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쥔채 모든 적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중위장 권준이 배를 돌려 노를 재촉하여 그 밑을 즉시 쳐서 그 배를 당파하려고 도적의 우두머리를 쏘라고 명령하였더니, 활시위로 응하자 이에 도적의 우두머리가 거꾸러졌습니다.
- 1592. 7.29(음력6. 21), 선조실록

 

주: 당포전투다. 우두머리는 득거통행이다. 여기에서는 복장을 묘사하였다.

거북선은 판옥선에 지붕을 씌운 구조였다. 따라서 거북선 역시 적함과 직접 부딪혀 충격을 주어 부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암초를 피하려고 좁은 안전 수로로 이동하다가 아군 판옥선끼리 부딪힐 것을 염려하였다.

而見乃梁 地形狹隘, 又多暗礁 板屋戰船 自相觸搏, 固亂容戰叱分不諭, 
견내량 지형이 협애하고, 또 암초가 많아서 판옥전선이 서로 접촉하여 부딪힐 것이니, 틀림없이 쉽게 싸우기 곤란할 뿐 아니라,
- 견내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狀) 3

更令諸將鶴翼列陣 一時齊進 各放地玄字勝字各樣銃筒 先破其二三隻. 則諸船之倭 挫氣退遁 而諸將軍吏 乘勝踴躍 爭先突進 箭丸交發 勢若風雷 焚船殺賊 一時殆盡. 
모든 장수들에게 학익열진을 펴도록 재차 명령하니, 일시에 일제히 전진해 각자 지자총통, 현자총통, 승자총통 등 각양의 총통을 발사하여 먼저 그 23척을 격파하였습니다. 곧 모든 배의 왜적은 기세가 꺾여 물러나 달아 나니, 모든 장수와 군리는 승승장구하여 경쟁하여 앞으로 돌진해 화살과 철환을 교대로 발사하니, 기세가 바람과 번개 같았습니다. 배를 불태우고 적을 죽이니, 일시에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 견내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狀) 4

 

주: 학익진은 다수가 소수를 상대할 때 쓰는 전술이다. 예를 들어 도주하는 적을 넓게 펼쳐 포위한채 추격하거나, 소수의 적을 에워 싸 공격하는 전술이다. 반대로 장사진은 포위를 뚫거나, 특정 목표물을 집중 공격할 때 쓰는 전술이다.

近又據陪臣兼三道水軍統制使李舜臣馳啓, 閑山島潰敗以後, 兵船、器械散失殆盡. 臣與全羅右道水軍節度使金億秋等 收拾戰船一十三隻 哨探船三十二隻 於海南縣海路 要口把截, 而有戰船一百三十餘隻, 從梨津浦前洋向來, 臣督水使金億秋、助防將裵興立、巨濟縣令安衛等, 各整兵船, 於珍島 碧波亭前洋, 與賊交鋒, 冒死力戰, 以大砲, 撞破賊船二十餘隻, 射殺甚多, 賊衆漂溺海中, 斬首八級.
근래 다시 배신 겸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올린 치계에 의하면, 한산도 해전에서 패하여 무너진 뒤로 병선과 병기를 흩뜨리고 잃어 버려서 태반이 없어졌습니다. 신이 전라 우도 수군절도사 김억기 등과 더불어 전선13척, 초탐선 32척을 수습하여 해남현 해로 요충지 입구를 파수하였는데, 전선 130여척이 있어 이진포를 따라서 앞바다로 향하여 오기에, 신이 수사 김억추, 조방장 배흥립, 거제 현령 안위 등을 통솔하여 각자 병선을 정리하도록 해서 진도 벽파정 앞바다에서 적과 더불어 교봉(교전)하여 죽을 힘으로 나아가 싸워서 대포로 적선 20여척을 당파하여, 아주 많이 사살하였고, 적의 무리가 떠다니다가 바다 속으로 빠졌으며, 벤 수급은 8급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1597. 12. 18(음력11. 10), 선조실록

 

遊擊曰 淸正之兵稍强, 而行長之軍, 不甚勁銳. 當連船來救之際, 欲爲繞出軍後之計, 且進且退, 勢若登岸. 俺初以大砲, 撞破一船而沈之, 賊猶不退, 又撞破一船 須臾二船繼破之, 賊乃退遁, 更無向岸之意.
명나라 유격 진인이 아뢰기를 가등청정의 병사가 약간 강하고, 소서행장의 군사는 참으로 강하지 않습니다. 연속으로 배로 와서 구원하려던 즈음에 출동한 군의 뒤를 포위하려는 꾀를 내어 또 나아갔다가, 또 물러났다가 하면서 연안에 오르려는 기세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대포로 한 척을 당파하여 침몰시켰어도 적이 그대로 후퇴하지 않기에 다시 1척을 당파하여 잠깐 동안에 연이어 격파하였더니 적이 곧 후퇴하여 도주하고는 다시는 연안으로 향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 1598. 2. 25(음력1. 20), 선조실록

統制使李舜臣馳啓曰 頃日海中之戰, 我軍銃砲齊發, 撞破賊船, 賊屍滿海, 倉卒之際, 不得盡爲鉤斬, 只斬七十餘級.
통제사 이순신이 긴급보고로 아뢰기를 지난 번 해상 전투에서 아군이 총통과 포를 일제히 발사하여 적선을 당파하여 적의 시체가 바다에 가득 찼사온데, 창졸지간이라서 다 갈고리로 끌어다가 참수하지 못하고, 단지 7여급만 목을 베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1598. 9. 13(음력8. 13), 선조실록


2. 육군

成龍啓曰 我國山城 多築山腰, 故敵人俯瞰 覘其虛實 易於撞破. 倭奴則必擇山頂 據險守要, 故駱參將見南山賊窟, 甚奇之, 稱善其制.
유성룡이 아뢰어 말 하기를 내 나라 산성을 산기슭에 쌓다보니, 적들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며 그 허실을 엿보아 역으로 당파해 버립니다. 왜인들은 즉 반드시 산 꼭대기를 가려서 험지에 웅거하여 요지를 지키니, 낙 참장이 남산의 적 소굴을 보고는 심히 기이하게 여겨 그 제도가 좋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 1595. 9. 26(음력8. 23), 선조실록

柳成龍馳啓曰 "本月二十五日, 軍官具懷愼回自蔚山. 天兵與我軍, 攻打倭賊內城, 城甚堅險, 大砲不能撞破."
유성룡이 달려 와 보고하기를 본월 25일 군관 구회신이 마산에서 돌아 왔습니다. 명군과 더불어 아군이 왜적의 내성을 공격하였으나, 성이 심히 견고하고 험하여 대포로도 당파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라고 하였다.
- 1598. 2. 9(음력1. 4), 선조실록

城堅攻之未易下, 欲以積草而焚之, 人持一束而上, 銃丸如雨, 近者輒倒, 無敢撲城者. 欲以大碗撞破, 而城高勢仰, 不得施技.
성이 견고하여 공격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인지라, 풀을 쌓아 태우려고 사람마다 풀을 동여 매고서 위로 향하였으나, 총환이 비와 같아서 접근한 자가 번번히 쓰러져서 감히 성을 치려는 자가 없었습니다. 대포로 당파하고자 하였으나, 성이 높아 올려다 보아야 하는 형세라서 기술을 펼 수 없었습니다.
- 1598. 2. 25(음력1. 20), 선조실록


수군 조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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