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정신 3

이승만의 감옥생활(1899~1904)<13편>독립정신 속의 친일정신

KOREAREVIEWVOLUME4.pdf 이승만, 대한제국 사람들은 일본에게 깊이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다. 1871년 일본 유신정부를 이끌던 3대 거두 암창구시(岩倉具視 이와쿠라 도모미), 대구보리통(大久保利通 오쿠보 도시미치), 목호효윤(木戶孝允 기도 다카요시)은 미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을 위해 사절단으로 미국을 향해 떠났다. 그 사이 1873년 8월 서향융성(西鄕隆盛 사이고 다카모리)은 정한론을 내세워서 왕의 승인을 받아 냈다. 그러나 마침 귀국한 사절단은 정부에 복귀하여 지금은 내치에 힘을 써 국력을 기를 때라면서 서향융성이 추진하던 정한을 중단시켜 버렸다. 서향융성의 1873년 8월 정한이 좌절되었 때는 완전히 막부가 사라진 뒤였음으로 과거 막부에서 생활하던 무사들은 생계의 수단이 사라져 힘든 ..

이승만 2015.10.21

이승만의 감옥생활(1899~1904)<12편> 독립정신의 실체

이승만, 책 독립정신을 쓰다. 일본의 통치권을 벗는 그 날로 우리나라 예수교국으로 만들어 현금 만주에서 조직된 한국 임시정부 내각의 국무경으로 선택된 이승만 박사는 오늘 연합 통신원을 대하여 말하기를 "이번 독립 운동 인도자들의 주의는 한국으로 동양의 처음되는 예수교국을 건설하겠노라" 하더라. - 신한민보 1919. 04. 07 독립투쟁을 하는 임시정부의 지도자로 선정되면 보통 어떻게 독립투쟁을 해 나갈 것인지 방향과 구체적인 투쟁 노선을 선언하는 법인데, 이승만은 황당하게도 기독교 국교화라는 엉뚱한 소리를 언론에 발표하였다. ①국민: 황성신문 4,003회, 대한매일신보 1,037회,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2,633회, 독립신문 135회, 한성순보 109회. ②인민: 황성신문 6,574회, 대한매일신보 ..

이승만 2015.10.19

이승만의 감옥생활(1899~1904)<9편>옥중 모범 생활 ②

이승만, 옥중에서 글을 쓰다. 1900년 2월 12일 김영선이 서판 임관 6등 정3품 한성 감옥서장으로 임명 받았다.1 감옥서장이 된 김영선은 감방 안의 위생 개선에 심혈을 기울여 죄수들로부터 신망을 얻었다.2 한성 감옥서장 김영선에 의해 위생이 개선된 환경에서 이승만은 글쓰기에 나선다. 이승만은 자신을 부풀리기 위하여 자서전에서 또 거짓말을 하였다. 감옥서에 필기구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글을 쓰려고 염료를 밀반입하여 잉크로 사용하였고, 사설을 작성해서 밀반출하여 제국신문에 몰래 이름 없이 실었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썼다는 걸 다 알아 보았다면서 자신의 과거를 과장하였다.3 실제로는 1898년 1월 19일 통첩한 감옥서 세칙 16조에 의하여 책, 종이와 필기구를 합법적으로 언제든지 반입할 수 있었다.4 ..

이승만 201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