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 15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5편 >

5. 김두한 생모와 외조모가 청산리 전투 때문에 고문 당해서 1925년에 죽었나?  김두한은 청산리 전투가 1925년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청산리 전투는 5년 전인 1920년에 발생했다. 1)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청산리 전투 때문에 고문 당했나? 김두한은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은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며, 원인은 청산리 전투후 일본 경찰에 어머니가 끌려 가셨던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두한은 가지도 않은 만주에서 귀국한 후에 청산리 전투가 일어났다며 시간까지 착각하고 있다.  "짧은 며칠 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후 청산리 대첩이 있은 후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일경에 투옥되었다." - 모란강 역두(驛頭)에서 부자 상봉,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 김두한 회고기 1963. "세계..

김두한 2015.08.21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4편 >

4. 김두한은 교동공립보통학교를 중퇴 했나? "돌아온 후 4월에 교동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갔습니다." - 김두한, 제4화 부친 김좌진장군을 만주에서 만나고 온 얘기, 노변야화, 동양방송 1969.10.17 "제가 공부를 못했어요. 교동보통공립학교 3년 동안에 2년 낙제했거든. 제 최종 학력이 교동공립보통학교 2학년입니다." - 김두한, 제4화 부친 김좌진장군을 만주에서 만나고 온 얘기, 노변야화, 동양방송 1969.10.17 "나는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일곱 살 때까지, 그러니까 교동 보통학교 2학년에 다니던 때까지는 그래도 외조모님과 어머님의 알뜰한 사랑 속에서 클 수 있었다." - 김두한, 제1부 옥중기, 명인옥중기, 희망출판사 1966 "나는 외조모님과 어머니 밑에서 교동 보통학교 2학년까..

김두한 2015.08.21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3편 >

3. 김두한은 만주에서 김좌진 장군을 만났나? "제가 1918년 음력 5월15일생으로 3·1운동 전에 태어났는데, 아버님이 만주로 떠나신 게 3·1운동 전 해라고 하니까 만 한 살 전입니다." - 김두한, 제1화 부친 김좌진 장군 얘기, 노변야화, 동아방송 1969.10.14 "이때 생겨 난 혁명아가 바로 나 김두한이다. 6개월 간의 피신생활에서 아버지가 향리인 홍성을 들러 만주로 건너가려 하실 때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이미 6개월의 태아가 되어 있었다." - 김두한, 백야의 피난처가 된 나의 산실,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 김두한 회고기 1963. 1) 김두한이 몇 살 때 누구랑 만주에 갔다고 주장하나?   구분주장 주체 도착일 또는  거주 기간김두한 나이 동행자주장 시기   비고 만주  방문 매일신보1..

김두한 2015.08.21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2편 >

2. 청진동 기생 김계월이 김두한의 어머니인가? 기생 김계월이 김두한의 어머니라는 최초의 주장은 청산리 전투 5년 후인 1925년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하였다. "김좌진과 김계월 8년만에 이역에서 해후 오랫동안 서로 그리워 하던 정랑 정부가 서로 만났다. 영고탑(寧古塔)에 근거를 두고 노령방면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과격파의 수령 김좌진(金佐鎭)은 자기의 정부(情婦) 전한성권번 기생 김계월(金桂月)(27)과 및 그 사이에 낳은 김두한(金斗漢)(8)을 데려가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써보았으나 국경의 경계가 엄중하여 오늘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바 이번 김계월도 정랑 김좌진을 생각하고 항상 민울히 지내던 중 지난 9일에 자기 모 박씨(朴氏)와 자식을 데리고 가산도구를 방매하여 여비를 만들어가지고 ..

김두한 2015.08.20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1편 >

1. 박 상궁의 딸 박계숙이 김두한의 어머니인가? "어느 날 선친께서는 지금의 서울 근교 야산(사직공원 뒤)에서 동지들과 회합을 가지셨다. 이 회합에는 백린, 윤성 등 30여 명의 독립투사들이 결집하여 이색적인 산상회담을 열고 있었는데, 일경은 이 정보를 미리 알고 이중 삼중으로 포위한 후 포위망을 착착 압축해왔다고 한다. 당황한 산상의 동지들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백야는 “내가 일경을 유인할 테니 동지들은 어서 속히 몸을 피해 먼저 대륙으로 망명하시오.”라고 말하면서 왜경들 앞에 홀연히 자태를 나타냈다고 한다. 백야는 두 손을 들고 왜경 앞에 항복하는 양 꾸미고 수갑을 채우려는 순간 순경 3명을 한꺼번에 때려 눕혔다. 그리고 그들이 소지했던 권총을 나꿔채 여러 발을 공중 발사하여 적의 시선을 자신..

김두한 201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