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
與步月刀同.
보월도와 더불어 같다.
三才圖會曰 使刀無如倭子之妙. 然其刀法有數勢高 而能識破者 禦之無難. 惟關王偃月刀刀勢旣大 其三十六刀法兵杖遇之無不屈者. 刀類中以此爲第一. 馬上刀要長須前過馬𩠐後過馬尾.
刀劒錄曰 關公爲先主所重 不惜身命 自採都山[卽武都山在緜竹縣]鐵 爲二刀 銘曰 萬人及公敗 公惜刀投之水中. [案. 此刀卽世俗所謂靑龍偃月刀也. 蓋靑龍之稱或由春秋繁露 劍之在左靑龍之象歟 抑亦偃月之制龍口啣, 刃中刻龍珠 有氣如焰以此命名歟]. 朙史劉綎傳曰 所用鑌鐵[出波斯. 堅利可切金玉] 刀百二十斤. 馬上輪轉如飛天下稱劉大刀.
삼재도회에 이르기를 "칼을 사용하는데 왜인의 묘리와 같은 것이 없다. 그 도법에 뛰어난 몇 가지 세가 있기는 하지만, 깨뜨리는 것을 능숙하게 알면 막는데 어려움이 없다. 오로지 관왕의 언월도 도세만이 처음부터 뛰어났다. 그 36도법을 병장기로 막으려다가 꺾이지 않은 자가 없었다. 칼의 종류 가운데 이 것이 제일이다. 마상도에서 요체는 길이가 모름지기 앞으로는 말머리를 지나야 하며, 뒤로는 말꼬리를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검록에 이르기를 "관공은 선주를 소중히 하여 신명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스스로 도산(都山)[즉 무도산으로 면죽현에 있다]에서 철을 캐서 칼 두 자루를 만들어 새기기를 '만인급공패(만인 및 제후는 패한다)'라고 했으며, 공은 애석하게도 칼을 물 속에 던지고 말았다. [안. 이 칼은 곧 세속에서 소위 칭하기를 청룡언월도라고 한다. 대개 청룡이라는 호칭이 어떤 이가 '검은 좌청룡의 형상으로 존재한다'라고 한 춘추번로에서 연유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언월의 제도 역시 용의 입에 재갈을 물렸고, 날 중간에 용의 구슬을 새겼는데, 불꽃같은 기운이 있다고 하여 이렇게 명명하였다.] 명사 유정전에 이르기를 "빈철(鑌鐵)[파사(페르시아)에서 나온다. 견고하고 날카로워 금과 옥을 자른다]을 사용하는 바 칼은 120근이다. 말 위에서 돌리면 나는 것 같아 천하가 칭하기를 유대도라고 한다.
[주]
1. 선주(先主): 유비
2. 춘추번로(春秋繁露): 전한 시대 동중서가 쓴 책이다. 제6책, 제복상(服制像) 제14에 "劍之在左靑龍之象也. 刀之在右白虎之象 鈎之在前赤鳥之象也. 冠之在首玄武之塚也. 四者人之盛飾也"(검은 좌청룡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도는 우백호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갈고리는 붉은 봉황의 형상으로 앞에 존재한다. 관모는 현무의 무덤 머리에 존재한다. 네 가지 것으로 사람은 성대하게 장식한다"라고 하였다.
3.유대도(劉大刀): 관우다. 관우를 유비의 큰 칼에 비유하였다.
案
偃月睂尖兩刀 俱刃濶 而柄長 其用同焉. 故武經以偃月爲刀中等一 秀吉𢜤睂尖常列其座右然茅氏稱偃月不可施陳. 尙順論睂尖野刀難用 抑或古今之使用隨時而不同. 歟倭奴之變關公現靈平壤之捷[萬曆癸巳正月提督李如宋破平壤]. 㠀山之戰[㠀山在蔚山. 萬曆丁酉經理楊鎬攻㠀山]奮厥神威掃彼妖氛. 冥佑我東邦祚緜緜. 東征將士建廟妥[他果切安也. 時大雅以妥以侑]靈. 神宗皇帝賜金頒額[戊戌逰擊陳寅, 經理楊鎬 助金立廟于崇禮文外 宣廟臨幸諸將出入 參拜曰爲東國求神助. 庚子皇帝以四千金付萬世德, 命立祠于興仁門外. 東征將士皆言 平壤之捷, 㠀山之戰 三路驅倭之役 關王輒顯靈來助於是請額於中朝. 帝命以敇建顯靈昭德關公之廟]. 吁其韙[音偉是也] 哉夫以倭子使刀之妙無所逃於偃月揮霍[猝遽也]之下, 其謂刀中之第一者非虛語也. 惜乎 三十六法之不盡傳也.
언월, 미첨 두 칼은 다 날이 넓고, 자루가 길고, 그 용도가 같다. 그러므로 무경에 칼 중에서 1등이라고 하였다. 수길은 미첨을 소중히 여겨 항상 그 앉는 자리의 오른쪽에 진열하였다. 그렇지만 모씨는 언월도를 칭하여 군진에서 사용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상순은 논하기를 미첨은 야전 칼로 쓰기 어렵다고 하였다. 또한 어떤 이는 고금의 사용이 때로는 같지 않다고 한다. 왜노의 난 때 관공이 신령을 드러내 평양에서 이겼다[만력 계사년 정월 제독 이여송이 평양을 격파하였다]. 도산(㠀山) 전투[도산은 울산에 있다. 만력 정유 경리 양호가 도산을 공격했다]에서 그 신위를 떨쳐서 저 전란을 쓸어 버렸다. 신이 도와서 내 동방을 면면히 보전하고 있다. 동정장사가 사당을 세우고 영을 안치하였다[타와 과를 반절해야 안정적이다. 때에 대아를 부르며 안치하고 유식을 하였다]. 신종황제가 비용을 하사하시고, 반액[무술년에 유격 진인, 경리 양호가 비용을 원조하여 숭례문 밖에 사당을 세우니, 선조께서 거동하시어 여러 장수와 참배하고 말 하시기를 신의 도움으로 동국을 구하였다라고 하셨다. 경자년에 황제가 4천금을 만세덕에게 주어, 흥인문 밖에 사당을 세울 것을 명하였다. 동정장사 모두가 평양 승전, 도산 전투, 삼로구왜지역을 관왕이 항상 영을 드러내 와서 도왔음으로 이에 중국 조정에 편액을 청한다고 하였다. 중국 황제는 칙명으로 '현령소덕 관공지묘'라고 달도록 하였다]을 내려 주셨다. 아! 의로움(韙)[음은 위(偉)가 맞다]이여. 병사로서 왜인이 사용하는 칼의 묘리도 언월을 재빠르게 휘두름 아래에서는 피할 수 없었으니, 그를 일컬어 칼 중에 제일이라는 것이 헛된 말이 아니다. 36법이 없어져 전해지지 않으니 애석하다.
[주]
1. 계사정월(癸巳正月): 양력 1593년 2월 8일 이여송 제독 부대가 평양성을 탈환했다.
2. 정유(丁酉): 양력 1597년 1월 29일 양호 경리 부대가 도산성 전투 승리로 울산을 탈환했다.
3. 액(額): 편액.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에 그 이름을 지어 내려주는 것이다.
3. 무술(戊戌): 1598년
4. 경자(庚子): 1600년
5. 삼로구왜지역(三路驅倭之役): 육군의 중로군, 동로군, 서로군이다. 조명 혼성부대로 모두 명군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해군의 경우에는 조명 혼성부대를 수로군이라고 하였다.
'무예도보통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예도보통지 - 쌍수도 2 (0) | 2023.07.16 |
---|---|
무예도보통지 - 쌍수도 1 (0) | 2023.07.16 |
무예도보통지 - 월도 3 (0) | 2023.02.26 |
무예도보통지 - 월도 2 (0) | 2023.02.26 |
무예도보통지 - 월도 1 (0) | 202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