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2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11편 >

11. 김두한은 조선 상인들을 보호 했나? 총독부가 청계천을 기준으로 청계천 남쪽에 지금의 명동(명치정)과 을지로(황금정), 충무로(본정) 등 신시가지를 조성하여 서울에 들어 온 5만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은행, 백화점, 극장 등 신흥 상업지구로 개발해서 살기에 좋았기에 거지들마저 종로보다는 본정으로 몰려 들었다. 반면 청계천 북쪽 종로는 기존의 조선인 상권이 신흥 일본 상권의 시장 장악에 밀려 축소되었다. 청계천 남쪽 일본인 백화점 소비자의 60%가 조선인일 정도로 조선인마저도 청계천 이남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로에서는 골목길로 상권이 이동해 주로 다방, 술집, 식당 등이 생겨나 서민층을 상대로 하는 유흥지역으로 변했다. 여기에 극장이 추가 되었다. 불량배들이 돈 안들이고 하루..

김두한 2015.08.22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7편 >

7. 김두한은 청계천 다리 밑에서 거지 생활을 했나? "어머니와 할머니가 예비검속을 했어요. 어머니 할머니가 안 계시니까 여덟 살 먹은 놈이 완전 거지가 된 거죠. 외삼촌이 집과 땅을 팔아 먹었으니까. 어머니의 오빠인데, 매일 도박하고 술 먹고 하는 게 일인 사람이었어요. 인사동 집이 백여 칸 됐고, 식모 한 사람이 집안 일을 거들어 주었는데, 어느날 인력거 타고 학교 다녀 왔더니 외삼촌이 도망갔다고 집달리가 와서 절 내쫓아 버렸어요.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되어 종로 2가 장자구 다리 밑에서 지냈습니다." - 김두한, 제4화 부친 김좌진장군을 만주에서 만나고 온 얘기, 노변야화, 동양방송 1969.10.17 "해가 저물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한데 잠을 자고, 또 날이 세면 걸어가면서 구걸 행각을 했다. ..

김두한 201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