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관 2

우미관 김두한까지 언론에 나타난 서울 조폭의 역사

폭력배의 역사에서 낭만파 주먹 시대가 존재한 적이 없다. 협객도 존재한 적이 없다. 건달도 존재한 적이 없다. 조폭 1세대의 출현 배경 서울, 특히 종로에 조선인 조폭들이 집중적으로 출현한 배경을 유흥업종의 등장과 밀집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청계천 이남에 일본인 거류 지역을 설정하고 개발에 들어가 황금정(을지로), 본정(충무로), 명치정(명동)이라는 5만명 일본인 거주 신도심을 건설하였다. 상대적으로 종로에 비해 규모가 컸고, 도시적이었으며, 자본을 집중하고 있었다.반대로 종로는 낙후 지역으로 전락하여 주로 요리점, 다방, 술을 파는 카페, 바, 기생집 등 유흥업종 상점들이 이면도로나 골목길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종로에는  몸을 안 파는 전통 관기 출신 외에 몸 파는 기생이 800명~ 1,00..

김두한 2015.10.28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11편 >

11. 김두한은 조선 상인들을 보호 했나? 총독부가 청계천을 기준으로 청계천 남쪽에 지금의 명동(명치정)과 을지로(황금정), 충무로(본정) 등 신시가지를 조성하여 서울에 들어 온 5만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은행, 백화점, 극장 등 신흥 상업지구로 개발해서 살기에 좋았기에 거지들마저 종로보다는 본정으로 몰려 들었다. 반면 청계천 북쪽 종로는 기존의 조선인 상권이 신흥 일본 상권의 시장 장악에 밀려 축소되었다. 청계천 남쪽 일본인 백화점 소비자의 60%가 조선인일 정도로 조선인마저도 청계천 이남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로에서는 골목길로 상권이 이동해 주로 다방, 술집, 식당 등이 생겨나 서민층을 상대로 하는 유흥지역으로 변했다. 여기에 극장이 추가 되었다. 불량배들이 돈 안들이고 하루..

김두한 201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