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2

이승만의 감옥생활(1899~1904)<10편>옥중 모범 생활 ③

이승만, 감옥서 학교 교사가 되다. 1901년 11월 종로 서린동 옛 전옥서 터에 3층 망루를 갖춘 서양식 감옥을 완공하자 죄수들이 신식 감옥으로 이감했다.1 김영선은 1900년 2월 21일 임관 6등 정3품 감옥서장에 임명되었다가 1902년 2월 21일에 임관 5등 정3품 감옥서장직을 연임하였다.2 서양식으로 새로 지어 감옥서 환경은 좋아졌지만 사회에서는 감옥서가 도적을 기르는 곳으로 심지어 죄수도 풀어 주었다는 풍문이 돌았고, 각국의 공사관과 영사관에서는 정부의 외부에 조회해 보는 등 여론이 좋지 않았다.3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감옥서장 김영선은 1902년 10월 간수장 이중진, 박진영과 함께 감옥 학교 신설을 추진하였다. 수 십명 규모로, 학비는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필요한 물품은 내외부에서 도움을 ..

이승만 2015.10.18

이승만의 감옥생활(1899~1904)<9편>옥중 모범 생활 ②

이승만, 옥중에서 글을 쓰다. 1900년 2월 12일 김영선이 서판 임관 6등 정3품 한성 감옥서장으로 임명 받았다.1 감옥서장이 된 김영선은 감방 안의 위생 개선에 심혈을 기울여 죄수들로부터 신망을 얻었다.2 한성 감옥서장 김영선에 의해 위생이 개선된 환경에서 이승만은 글쓰기에 나선다. 이승만은 자신을 부풀리기 위하여 자서전에서 또 거짓말을 하였다. 감옥서에 필기구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글을 쓰려고 염료를 밀반입하여 잉크로 사용하였고, 사설을 작성해서 밀반출하여 제국신문에 몰래 이름 없이 실었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썼다는 걸 다 알아 보았다면서 자신의 과거를 과장하였다.3 실제로는 1898년 1월 19일 통첩한 감옥서 세칙 16조에 의하여 책, 종이와 필기구를 합법적으로 언제든지 반입할 수 있었다.4 ..

이승만 201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