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이승만의 감옥생활(1899~1904)<9편>옥중 모범 생활 ②

허구인물 전우치 2015. 10. 17. 15:04

이승만, 옥중에서 글을 쓰다.

 

1900년 2월 12일 김영선이 서판 임관 6등 정3품 한성 감옥서장으로 임명 받았다.1 감옥서장이 된 김영선은 감방 안의 위생 개선에 심혈을 기울여 죄수들로부터 신망을 얻었다.2


한성 감옥서장 김영선에 의해 위생이 개선된 환경에서 이승만은 글쓰기에 나선다.


이승만은 자신을 부풀리기 위하여 자서전에서 또 거짓말을 하였다. 감옥서에 필기구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글을 쓰려고 염료를 밀반입하여 잉크로 사용하였고, 사설을 작성해서 밀반출하여 제국신문에 몰래 이름 없이 실었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썼다는 걸 다 알아 보았다면서 자신의 과거를 과장하였다.3


실제로는 1898년 1월 19일 통첩한 감옥서 세칙 16조에 의하여 책, 종이와 필기구를 합법적으로 언제든지 반입할 수 있었다.4 또한 감옥서에서 작성하여 제국신문에 기고한 사설에는 이승만의 이름이 버젓히 실렸지만 처벌받지 않았다.5 편지를 검열하여 감옥서에서 보내고 받게 하듯이6 신문 기고문 또한 검열해서 문제가 없었으니 내보냈다.

 

문제가 된다면 종이값이었을 것이다. 이승만이 120수의 옥중 한시를 써서 책으로 엮을 정도면 지독하게 붓글씨 연습을 해야 했고, 게다가 책도 4권이나 썼기에 많은 양의 종이와 먹, 잉크 등이 소요되었을테니 그 돈을 대려고 부인 박승선이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헌신한 양처 박승선을 이승만은 백인 과부와 바람나서 버렸다.

 
이승만은 옥중생활 5년 7개월 동안 5권의 책을 번역하고, 5권의 책을 썼으며, 2곳에 기고하였다.

 

번역서
중동전기(국역)
만국사략(국역)
주복문답(국역, 주복담보를 번역하면서 주복문답으로 제목을 바꿈)
The Junior Methodist History(산수)
English Grammer Material Primer(영어 문법)


저서
체역집(한시)
산술(한문 산수)
적주채벽
청일전기(청일전쟁)
독립정신(중국 백과사전과 대한제국 소학교 교과서 발췌 및 정치적 주장)

 

기고
제국신문(1902. 02. 12 ~ 1903. 04. 16 매주 수요일, 1903. 07. 06 ~ 1904. 06. 13)
신학월보(옥중전도,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 두 가지 편벽됨, 교회경략, 대한 교우들이 힘쓸 일)

 


 

  1. 통첩 제33호 1900년 2월 21일 內部 監獄署長 金英善 二月十二日 受牒內部參書官 吳永烈議政府參書官 趙秉圭 座下光武四年二月二十一日 [본문으로]
  2. 황성신문 1900. 05. 22 감옥서장 김영선씨가 찰직 이래도 죄인의 감수보호와 방간의 위생 등 절을 무등 장정함에 죄인간에 감복하는 정이 다하다더라. 監獄署長金英善氏가 察職以來로 罪囚의 監守保護와 房間의 衛生等節을 務遵章程함에 罪囚間에 感服하는 情이 多하다더라. [본문으로]
  3. Robert Tarbell Oliver,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Dodd Mead and Company 1954, 54쪽 Writing implements, too, were forbidden. However, Rhee made ink from dyes that were smuggled in, and practiced writing on used copies of the magazines. After a time he commenced writing editorials for his daily newspaper, the Maiyil Sinmun, which once again was being published.These were smuggled out and printed, unsigned, of course, but the fact of his authorship gradually became well known. 필기 도구들 역시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밀반입한 염료를 잉크를 만들어 잡지들을 필사하면서 글쓰기 연습을 하였다. 시간이 흐른 후 그의 재발행하게 된 일일신문인 매일신문에 사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설들은 밀반출되어 인쇄되었는데, 물론 서명이 없었지만, 그가 원저작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게 되었다. / 로버트는 제국신문을 매일신문이라고 잘못 적었다. 매일신문은 1899년 4월 4일자로 폐간되었다. 매일신문에 기고했다면 이는 평리원 고등재판소에서 심리 중 2월에서 4월까지 2개월간 기고문을 썼다는 것이 된다. [본문으로]
  4. 제4장 접견 및 자공품(接見及自供品) 제16조 물론 기결 미결수하고 그 친속과 오랜 친구로서 서적[전항의 종류에 한]과 용지, 이불과 베게, 음식물을 더 많이 넣고자 청하는 때는 허락하되 음식물은 술 또는 담배 제하고 감옥서에서 불로 조리함을 요하지 아니할 물건으로써 일일 삼차씩 일인일식할 양으로 제한할 일. [본문으로]
  5. 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 연세대학교출판부 2004 77쪽 투옥되기 전에 언론활동을 펼친 경력이 있으며 투옥 당시 제국신문 편집인이었던 이승만은 제국신문 사장 이종일의 요청에 따라 옥중에서 이 신문에 기명 혹은 무기명으로 논설을 투고하였다. [본문으로]
  6. 내부령 제11호 통첩 1898. 01. 19, 監獄細則 제4장 접견 및 자공품(接見及自供品) 在監人中 衣服或錢財等事로 書札來往은 署長이 一一披閱後 準許하되 私囑은 嚴禁할 事.제20조 재감인중 옷 또는 돈 등의 일로 서찰 내왕은 서장이 一一 피열한 다음 준허하되 사사로운 접촉은 엄금할 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