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적 2

우미관 김두한까지 언론에 나타난 서울 조폭의 역사

폭력배의 역사에서 낭만파 주먹 시대가 존재한 적이 없다. 협객도 존재한 적이 없다. 건달도 존재한 적이 없다. 조폭 1세대의 출현 배경 서울, 특히 종로에 조선인 조폭들이 집중적으로 출현한 배경을 유흥업종의 등장과 밀집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청계천 이남에 일본인 거류 지역을 설정하고 개발에 들어가 황금정(을지로), 본정(충무로), 명치정(명동)이라는 5만명 일본인 거주 신도심을 건설하였다. 상대적으로 종로에 비해 규모가 컸고, 도시적이었으며, 자본을 집중하고 있었다.반대로 종로는 낙후 지역으로 전락하여 주로 요리점, 다방, 술을 파는 카페, 바, 기생집 등 유흥업종 상점들이 이면도로나 골목길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종로에는  몸을 안 파는 전통 관기 출신 외에 몸 파는 기생이 800명~ 1,00..

김두한 2015.10.28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아니다. <12편 >

12. 김두한은 징용 당한 조선인을 위해 반도의용정신대를 만들었나? "스물다섯이 됐을 때가 태평양 전쟁 말기인데 해남도로 가라는 징용장이 나왔어요. 그때는 이미 미국 잠수함이 바다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남도에 가면 물귀신 되기 십상이었지요. 나 말고도 서울에 있는 주먹 3천명에게도 징용장이 나왔어요." - 김두한, 제10화 해방될 때까지 주먹생활 하던 이야기, 노변야화, 동양방송, 1969.10.24 "나는 경시청으로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단게 국장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사복을 입은 한 사람이 어디서 왔느냐고 놀랍다는 어투로 물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김좌진」이라고 새긴 명함을 내밀고 이런 사람이 왔다고 전하라고 했다. 그는 명함을 들고 들어 갔다. 아까와는 다른 융숭한 태도로 나를 국장실로..

김두한 201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