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죄 없이 사복 경찰관에게 잡히다. 윤치호, 이상재, 이건호 등이 이끌던 독립협회는 1898년 2월 27일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를 반대하고, 3월 1일 한국 러시아 은행 철수를 요구하며, 3월 7일 일본에게 조차한 석탄기지를 회수하라는 항의문을 대한제국 정부에 발송하고, 3월 10일에는 만민공동회라는 대규모 국민집회를 개최하였다. 이승만은 이 집회에서 총대위원에 선출되어 이후 집회 때마다 선동 연설에 열을 올렸다.1 러시아의 이틀 시한의 러군 철수 위협과 만민공동회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던 대한제국 정부는 3월 11일 밤 만민공동회의 결의에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러시아군은 철수했고, 한러 은행도 철폐했다. 일본도 월미도 석탄고 기지를 반환했다. 1898년 10월 12일 친러파를 몰아내고 박정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