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회 2

친일 단체 일진회 대변인 이승만

송병준은 1904년 2월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통역사로 일본군 제12사단 병참감 대곡희구장(大谷喜久藏 오따니 기꾸조) 육군 소장을 따라 청국에까지 진출했다가 대한제국에 들어 왔다. 송병준은 독립협회 회원이었던 윤시병, 유학주, 염중모, 윤길병, 홍귀섭 등을 포섭하여 같은 해 8월 18일 유신회를 조직하였다. 이틀 뒤인 20일에 송병준이 다시 회의를 열었는데, 이때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칙령으로 총순과 순검을 파견하여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일본군 12사단 헌병들이 나서서 막으며 경무청 순검이 칙령을 시행치 못하게 만들었다.1 송병준은 유신회를 일진회로 개명하였고, 회장에 윤시병, 부회장에 유학주를 추대하였다. 윤시병은 1898년 3월 남궁억, 고희준과 더불어 독립협회 총대위원에 선출되었고, 1898년 11월 ..

이승만 2015.11.12

이승만의 감옥생활(1899~1904)<13편>독립정신 속의 친일정신

KOREAREVIEWVOLUME4.pdf 이승만, 대한제국 사람들은 일본에게 깊이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다. 1871년 일본 유신정부를 이끌던 3대 거두 암창구시(岩倉具視 이와쿠라 도모미), 대구보리통(大久保利通 오쿠보 도시미치), 목호효윤(木戶孝允 기도 다카요시)은 미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을 위해 사절단으로 미국을 향해 떠났다. 그 사이 1873년 8월 서향융성(西鄕隆盛 사이고 다카모리)은 정한론을 내세워서 왕의 승인을 받아 냈다. 그러나 마침 귀국한 사절단은 정부에 복귀하여 지금은 내치에 힘을 써 국력을 기를 때라면서 서향융성이 추진하던 정한을 중단시켜 버렸다. 서향융성의 1873년 8월 정한이 좌절되었 때는 완전히 막부가 사라진 뒤였음으로 과거 막부에서 생활하던 무사들은 생계의 수단이 사라져 힘든 ..

이승만 2015.10.21